장[ 醬 ]콩을 주원료로 발효시켜 만든 조미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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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6-26 16:59 조회4,30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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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라는 글자가 동양의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주례 周禮≫
선부(膳夫)로 장 120동이란 표현이
나온다.
또 ≪사물기원 事物紀原≫에서는
주공(周公)이 장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장의 정체에 대하여 ≪주례≫의
주(註)에서 말하기는 “장에는 해(醢)나 혜(醯)가 있다.
해는 새고기·짐승고기·물고기 할 것 없이 어떤 고기라도
이것을 햇볕에 말려서 고운 가루로 하여 술에 담그고, 여기에 조로 만든 누룩과 소금을 넣어 잘 섞어 항아리에 넣고 밀폐하여 100일간 어두운 곳에서 숙성시켜 얻은 것이다.
혜는 재료가 해와 같으나 청매(靑梅)의 즙을 넣어서 신맛이 나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주례≫ 속의 장인 해와 혜는 분명히 육장(肉醬)이다.
해는 소금으로 고기의 부패를 막으면서 발효에 의하여 단백질을 아미노산이나 펩타이드로 분해시킨다.
또 누룩에서 당분이 생성된다. 그리고 술을 넣었기 때문에 알코올과 생성된 산에 의하여 좋은 맛과 향기를 가지게 되는 것으로 중국 본래의 조미료이다.
우리 동이권(東夷圈)에서는 장을 콩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농학계에서는 콩의 원산지를 만주라 본다.
만주는 고구려의 옛 땅이므로 콩재배의 개발은 우리들의 조상에 의하여 이루어진 셈이다.
최근 한반도 내에서도 콩의 야생종과 재배종의 중간 종이 발견
되었다.
중국의 앙소·용산의 농경문화의 유물에는 콩이 보이지 않는다.
≪관자 管子≫에 의하면 서기전 7세기 초엽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지금의 만주 남부인 산융(山戎)을 제압하고,
여기서 콩을 가져와서 융숙(戎菽)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와같이,
우리들의 조상은 스스로 개발한 콩을 교묘하게 가공하여 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에서는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고 하였다.
이것이 어떤 종류의 발효식품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서기전 4세기경의 황해도 안악3호고분(安岳三號古墳)의 벽화에
우물가에 발효식품을 갈무리한 듯한 독이 보인다.
≪해동역사 海東繹史≫에서 ≪신당서 新唐書≫를 인용하여 발해의 명산물로서 책성(柵城)의 시(豉; 메주)를 들고 있다.
발해는 고구려의 유민이 세운 나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에 대하여 ≪설문해자 說文解字≫에서는
배염유숙(配鹽幽菽)이라 하였다.
숙(菽)이란 콩이고 유(幽)는 ‘어둡다’ 뜻이니 어두운 곳에서
발효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금을 섞으면 곧 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청국장에 해당하는 산국(散麴)이다.
콩을 개발하였고 일찍이 온돌의 원형인 갱(坑)을 가지고 있었던
고구려 사람들이 이러한 발효식품을 만들게 된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 [醬] (한국민족)
처음 등장하는 것은 ≪주례 周禮≫
선부(膳夫)로 장 120동이란 표현이
나온다.
또 ≪사물기원 事物紀原≫에서는
주공(周公)이 장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장의 정체에 대하여 ≪주례≫의
주(註)에서 말하기는 “장에는 해(醢)나 혜(醯)가 있다.
해는 새고기·짐승고기·물고기 할 것 없이 어떤 고기라도
이것을 햇볕에 말려서 고운 가루로 하여 술에 담그고, 여기에 조로 만든 누룩과 소금을 넣어 잘 섞어 항아리에 넣고 밀폐하여 100일간 어두운 곳에서 숙성시켜 얻은 것이다.
혜는 재료가 해와 같으나 청매(靑梅)의 즙을 넣어서 신맛이 나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주례≫ 속의 장인 해와 혜는 분명히 육장(肉醬)이다.
해는 소금으로 고기의 부패를 막으면서 발효에 의하여 단백질을 아미노산이나 펩타이드로 분해시킨다.
또 누룩에서 당분이 생성된다. 그리고 술을 넣었기 때문에 알코올과 생성된 산에 의하여 좋은 맛과 향기를 가지게 되는 것으로 중국 본래의 조미료이다.
우리 동이권(東夷圈)에서는 장을 콩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농학계에서는 콩의 원산지를 만주라 본다.
만주는 고구려의 옛 땅이므로 콩재배의 개발은 우리들의 조상에 의하여 이루어진 셈이다.
최근 한반도 내에서도 콩의 야생종과 재배종의 중간 종이 발견
되었다.
중국의 앙소·용산의 농경문화의 유물에는 콩이 보이지 않는다.
≪관자 管子≫에 의하면 서기전 7세기 초엽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지금의 만주 남부인 산융(山戎)을 제압하고,
여기서 콩을 가져와서 융숙(戎菽)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와같이,
우리들의 조상은 스스로 개발한 콩을 교묘하게 가공하여 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에서는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고 하였다.
이것이 어떤 종류의 발효식품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서기전 4세기경의 황해도 안악3호고분(安岳三號古墳)의 벽화에
우물가에 발효식품을 갈무리한 듯한 독이 보인다.
≪해동역사 海東繹史≫에서 ≪신당서 新唐書≫를 인용하여 발해의 명산물로서 책성(柵城)의 시(豉; 메주)를 들고 있다.
발해는 고구려의 유민이 세운 나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에 대하여 ≪설문해자 說文解字≫에서는
배염유숙(配鹽幽菽)이라 하였다.
숙(菽)이란 콩이고 유(幽)는 ‘어둡다’ 뜻이니 어두운 곳에서
발효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금을 섞으면 곧 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청국장에 해당하는 산국(散麴)이다.
콩을 개발하였고 일찍이 온돌의 원형인 갱(坑)을 가지고 있었던
고구려 사람들이 이러한 발효식품을 만들게 된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 [醬] (한국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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