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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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6-26 17:01 조회4,40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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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 무엇일까?
일본의 ≪다이호율령 大寶律令≫(701)의 대선직(大膳職)
주장(主醬)에 보면 장은 장(醬)·시(豉)·말장(末醬)의 셋으로 정리되어 있고, ≪쇼소원문서 正倉院文書≫ 덴페이 11년(739) 정세장(正稅帳)에도 말장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미소’라 읽고 있다.
이 미소라는 말의 어원에 대하여 아라이(新井白石)는 그의 ≪도우가 東雅≫라는 책에서 고려의 장인 말장이 일본에 들어와서
그 나라 방언 그대로 ‘미소’라고 불렸다고 하였다.
일본에서 말장을 우리 나라의 방언 그대로 미소라고 하였다면
미소의 어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만주어로 장을 ‘미순(misun)’이라 하고, 또 ≪계림유사≫ 고려방언에서는 장왈밀조(醬曰密祖)라 하였으며, ≪이두고 吏頭考≫에서는 말장며조, 즉 훈조(燻造)라 하였으며, ≪증보산림경제≫에도 말장이라 적고 며조라 부르고 있다.
이것으로 미순→밀조→미소의 계열이 성립된다.
만주 남부에서 개발한 배염유숙은 오늘날의 청국장의 무리로서
중국에 가서 시라 불리게 되었다. 한편 만주 남부에서는 시 아닌
또 하나의 장이 개발되었으니 이것이 미소(末醬)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의 말장은 어떤 것인지 당시의 일본 문헌을 통해서 정체를 잡기가 매우 애매하다.
무가이(向井之升)가 1671년에 지은 ≪호쥬비요우와매이혼소 庖厨備用倭名本草≫에서는 일본 미소의 본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다.
곧 “요즘의 미소는 콩과 쌀누룩으로 만들지만 본래의 미소는 콩만을 써서 삶아 짓찧어 둥글거나 모난 떡같은 모양을 만들어 곰팡이가 핀 뒤에 건조한 장메주 이른바 병국(餠麴)을 만들고, 이것을
부셔서 소금과 함께 통에 채워서 숙성시킨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산촌에서는 콩으로 만든 메주덩이로 된장을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메주덩이나 된장처럼 고체상태의 것을 말장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일본의 간무왕(桓武王) 호키(寶龜) 2년(771)의 ≪호샤잇사이교쇼코쿠사쿠카이 奉寫一切經所告朔解≫에서 “장 4말 2되는 콩 5말로 즙을 얻는다.”고 하였으니 당시의 장은 액체상태의 간장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일본에는 쌀이 풍부하므로 콩에다 쌀누룩을 섞은 된장을 만들어 미소라 하였고,
밀이 풍부한 중국에서 콩에다 밀을 섞어 간장을 만드니 감칠맛에 단맛이 더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옛 고구려 땅에서 발상한 두 장은
중국과 일본에 전파되어 마침내 중국·한국·일본의 세 나라로
하여금 세계의 조미료 분포상으로 한계열의 두장권을 형성하게 한 것이다.
≪고려사≫ 식화지(食貨志)에는 1018 년(현종 9)에 거란의 침입으로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백성들에게 소금과 장을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과 1052년(문종 6)에 개경의 굶주린 백성 3만여 명에게 쌀·조·시(豉)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고려시대의 장과 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까?
중국의 시에는 담시(淡豉)와 함시(醎豉)가 있다.
담시는 콩을 삶아 청국장을 만들 듯이 하여 건조한 것이고,
함시는 이에 소금·생강·천초·귤·차조기·회향·행인 등을 섞은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 [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일본의 ≪다이호율령 大寶律令≫(701)의 대선직(大膳職)
주장(主醬)에 보면 장은 장(醬)·시(豉)·말장(末醬)의 셋으로 정리되어 있고, ≪쇼소원문서 正倉院文書≫ 덴페이 11년(739) 정세장(正稅帳)에도 말장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미소’라 읽고 있다.
이 미소라는 말의 어원에 대하여 아라이(新井白石)는 그의 ≪도우가 東雅≫라는 책에서 고려의 장인 말장이 일본에 들어와서
그 나라 방언 그대로 ‘미소’라고 불렸다고 하였다.
일본에서 말장을 우리 나라의 방언 그대로 미소라고 하였다면
미소의 어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만주어로 장을 ‘미순(misun)’이라 하고, 또 ≪계림유사≫ 고려방언에서는 장왈밀조(醬曰密祖)라 하였으며, ≪이두고 吏頭考≫에서는 말장며조, 즉 훈조(燻造)라 하였으며, ≪증보산림경제≫에도 말장이라 적고 며조라 부르고 있다.
이것으로 미순→밀조→미소의 계열이 성립된다.
만주 남부에서 개발한 배염유숙은 오늘날의 청국장의 무리로서
중국에 가서 시라 불리게 되었다. 한편 만주 남부에서는 시 아닌
또 하나의 장이 개발되었으니 이것이 미소(末醬)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의 말장은 어떤 것인지 당시의 일본 문헌을 통해서 정체를 잡기가 매우 애매하다.
무가이(向井之升)가 1671년에 지은 ≪호쥬비요우와매이혼소 庖厨備用倭名本草≫에서는 일본 미소의 본래 모습을 잘 설명하고 있다.
곧 “요즘의 미소는 콩과 쌀누룩으로 만들지만 본래의 미소는 콩만을 써서 삶아 짓찧어 둥글거나 모난 떡같은 모양을 만들어 곰팡이가 핀 뒤에 건조한 장메주 이른바 병국(餠麴)을 만들고, 이것을
부셔서 소금과 함께 통에 채워서 숙성시킨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산촌에서는 콩으로 만든 메주덩이로 된장을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메주덩이나 된장처럼 고체상태의 것을 말장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일본의 간무왕(桓武王) 호키(寶龜) 2년(771)의 ≪호샤잇사이교쇼코쿠사쿠카이 奉寫一切經所告朔解≫에서 “장 4말 2되는 콩 5말로 즙을 얻는다.”고 하였으니 당시의 장은 액체상태의 간장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일본에는 쌀이 풍부하므로 콩에다 쌀누룩을 섞은 된장을 만들어 미소라 하였고,
밀이 풍부한 중국에서 콩에다 밀을 섞어 간장을 만드니 감칠맛에 단맛이 더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옛 고구려 땅에서 발상한 두 장은
중국과 일본에 전파되어 마침내 중국·한국·일본의 세 나라로
하여금 세계의 조미료 분포상으로 한계열의 두장권을 형성하게 한 것이다.
≪고려사≫ 식화지(食貨志)에는 1018 년(현종 9)에 거란의 침입으로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백성들에게 소금과 장을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과 1052년(문종 6)에 개경의 굶주린 백성 3만여 명에게 쌀·조·시(豉)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고려시대의 장과 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까?
중국의 시에는 담시(淡豉)와 함시(醎豉)가 있다.
담시는 콩을 삶아 청국장을 만들 듯이 하여 건조한 것이고,
함시는 이에 소금·생강·천초·귤·차조기·회향·행인 등을 섞은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 [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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